1.처음으로 만났던 날 내 첫사랑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문학을 아주 좋아하던 애였다. 3월, 한창 바쁠 시기에 문학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던 것은 순전히 내 첫사랑의 탓이었다. 내 첫사랑은 어딘지 모르게 말간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강단 있는 인상마저도 숨길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하야면서도 울긋불긋한 얼굴. 정확하게 정의조차 내릴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어쩐지 내 시선은 자꾸만 내 대각선 앞자리에 있던 그 애의 얼굴에 닿아 있었다. 왜인지는 나도 몰랐다. 그저 필기를 할 때면 바쁘게 움직이는 손과는 달리 반대손으로 턱을 괸 채 살짝 입술을 벌리고서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는 그 얼굴이, 마냥 이유도 없이 자꾸만 관심이 가던 것이었다. 자꾸만 마음이 쓰이던 그 인상을 바라보던 ..
매일 익숙하게 여기는 길가를 걷다보면, 저보다 몇 배는 우람한 나무와 그리 느끼는 나무 귀퉁이에 나란히 앉아 영문조차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로 아침을 지저귀는 새들과, 모든 것이 익숙하다 자각할 무렵에 남의 영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하게 피어있는 꽃들이 있다. 나는 항상 이 자리에 멈추어, 우선 주변을 응시한다. 이 곳은 그 누구도 지나가지도, 가까이 할 생각조차 없는 그런 길가에 내가 중심에 서서 무얼 하느냐. 허수아비도 아닌, 그런 내가 꼿꼿하게 서서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앞으로 뻗는다. 이렇게라도 하면 꼭 누군가가 나타나 이 얼어붙은 손을 맞잡아 줄 것 같아서, 누군가의 체온을 느껴보고 싶어서. 단지 염원, 일지 모른다고. 나는 알고 있다. 절대 이 손을 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그리..
1 그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신발에 축축한 나뭇잎이 달라붙어 걷기가 힘들었다. 번개가 칠 때마다 뇌성이 땅을 울렸다. 차가운 비가 끊임없이 떨어져서 종내에는 물 안에 잠겨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우르릉거리는 빗소리나 천둥 때문에 들리지 않는 건지 목소리가 들려오질 않아 일부러 더 크게 소리쳤다. 이사쿠는 불이 번진 쪽으로부터 달려와서 얼굴이 까맸다. 검댕들이 빗줄기에 씻겨나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이사쿠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낯선 감각 때문에 시야가 좁고 흔들리고 어지러웠다. 이사쿠가 팔을 잡는 순간 번쩍 낙뢰가 근처에 떨어지면서 환한 빛에 정신을 차렸다. 빗줄기가 안개를 만들어내서 불이 난 성 근처에는 붉은 연기가 낀 것 같았다. 비가 엄청 거센데도 불길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왼 팔은..
[일탈] 뻗으면 손가락에 묻어날 것만 같은 파란 하늘. 그 몸 위를 느릿하게 흘러가는 새하얀 구름이 고요하게 대지를 훑어보았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맞닿은 대지 위에 살짝 솟아난 잔디가 살랑거리며 보기 드문 여유로운 자와 바쁜 자들의 눈을 유혹했다. 살랑거리는 잔디를 바라본 직장인들의 눈에는 잠깐의 아픔이 서렸다 저 멀리 날아갔다.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아마 그들만이 알고 있으리. 그들 중에는 두 손 가득 연갈색의 서류봉투를 양팔로 껴안은 한 여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광경을 흘낏 보고 지나가던 다른 이들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왜 신기하게도 시선을 끄는 작은 잔디밭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며. 멈춰 섰다. 그것을 주시하는 눈엔 호기심이 잔뜩 반짝이고, 다가서는 다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